[현장과 사람]이철호 터직업환경의학센터 대표원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조회2,146회 작성일 21-04-07 19:06본문
뉴스를 검색하다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 현황’ 관련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일하다가 사고로 숨진 노동자가 1090명이란다. 질병 재해 사망자는 839명. 모두 합하면 1929명이다. 365일로 나누어 보니 하루 평균 산재사망자는 5.28명. 여기에 사고로 말미암은 재해자 수는 8만 4197명이었다. 한 해에 약 9만 명의 일하는 사람이 숨지거나 다치는 대한민국. 이 통계만으로도 우리나라 노동자는 그리 ‘안녕들 하시지’는 못한 것 같다.
4월 28일은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충무공 탄생일이기도 하다)이다.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의 유례는 1993년 4월 태국의 한 인형 만드는 공장에서 화재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대형 참사의 원인은 노동자가 인형을 훔쳐 가는 것을 방지한다며 회사가 공장문을 밖에서 잠갔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국내 첫 직업환경 의학전문 의료기관
지난 4월 8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제일상가 3층 원장실에서 이철호(51) 원장을 만났다. ‘터직업환경의학센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직업환경 의학전문의들이 뜻을 합쳐 개업한 ‘직업환경 의학전문 의료기관’이다.
이 원장이 태어난 곳은 강원도 태백이다. 아버지는 광부였고, 많은 탄광노동자들처럼 진폐증으로 고생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8살까지 살았고, 이후 가족들과 부산으로 이사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의 경력은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서울대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에 합격했지만,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도 보지 않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다소 복잡하지만, ‘철호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요청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부산대 의대에 입학해 1996년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제도가 마련된 이후 ‘1호 졸업생’이기도 하다. 직업환경의학과는 당시 부산대 의대를 비롯해 전국에 8곳에 개설됐다.
“의사를 하게 된 뚜렷한 계기는 사실 없어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지고 만드는 걸 무척 좋아했죠. 공학도가 될 거라는 생각만 했었죠. 예과생 땐 의대 공부가 그리 재밌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 관심을 돌렸죠. 우연한 기회에 친구 소개로 야학을 하게 됐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어요. 예과생 땐 시간 여유가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시간을 낼 수 있었거든요. 야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어요. 야학을 할수록 사람 만나는 폭도 더 넓어지고, 당시 표현으로는 ‘수렁에 빠진다’ 했는데….(웃음) 아, 저도 영화 〈변호인〉 봤는데요. 제가 야학할 때는 크게 노동야학(의식화), 검정고시 야학, 생활야학(사회적 고발과 비판)으로 나누어졌었는데 영화에선 검정고시 야학이 나오더군요. 사실 잡혀갈 정도면 생활야학 정도는 되어야 맞지 않았나 싶었어요. 직업환경의학 쪽으로 전공을 선택한 계기는 다소 짧기는 합니다만, 공대 다녔던 경험과 예과생 때의 야학, 그리고 아버지 병(진폐증) 등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직업환경의학이란 개념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아서 조금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쉽게 말해 노동자 건강관리를 하는 거죠. 직업환경의학은 예방의학에서 특화되어서 나왔습니다.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모든 질병을 다룹니다. 그래서 전공의 전체 수련과정 4년 동안 모든 과를 돌면서 훈련을 받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은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에서는 전문의가 되고 나서 별도로 전문의 자격을 따게 되어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그런 편제가 없어서 좀 아쉽습니다.”
이 원장이 창원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4년 전인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는 직업환경의학이 가장 발전할 수 있는 곳으로 창원을 주목했어요. 산업보건도 기업주와 노동자의 힘 관계에 의해 크게 달라지거든요. 창원은 노동자 권리의식이 다른 지역보다 상당히 신장한 곳입니다. 그래서 창원에서 직업환경의학을 하게 되면 이 분야가 풍부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2000년에 오고 싶었지만, 그땐 준비 정도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바로 오지는 못하고, 2000년부터 2년간을 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에서 임상강사(펠로우)로 일을 했었지요.
그 중 2001년 1월부터는 그 시기에 개항한 인천 영종도국제공항의 항공의료원 초대원장으로 갔었죠. 당시 그곳으로 가면서 항공의료원이 종사자들을 위한 보건관리 의료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전엔 공항에 있는 의료시설은 대부분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을 위한 응급시설에 머물렀거든요. 항공의료원에서는 공항에서 일하는 4000명의 노동자에 대해 보건관리를 했습니다. 운영이 잘 됐습니다. 그 당시 경험을 통해 우리 산업보건관리가 타깃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상 산업보건관리 결정은 사업주들이 합니다. 사업주는 질 높은 서비스를 원하지 않습니다. 산업보건 시장은 ‘소비자 역설’이 작동하거든요. 정상적인 시장은 질 좋은 걸 구매하려고 하는데, 여기에선 질이 좋으면 구매를 하지 않습니다. 질 좋은 서비스일수록 사업주 처지에서는 생산에 차질을 준다고 보는 거죠. 이러다 보니 서비스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서비스 질이 낮아지니 노동자들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 거죠. 산업보건이 그냥 의사들이 잠시 와서 설명하고 가는 수준이 아니라 치료도 하고, 뭔가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종도의 경험’이 참 소중한 거죠.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지난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창원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 있으면서 개원을 조금씩 준비했습니다.
2005년까지 창원 남양동에서 살았는데, 아이 학교 탓에 부산으로 다시 들어가게 됐지요. 현재 부산 사상구 주례에서 거주하면서 출퇴근 하고 있습니다. 개원식은 지난 2009년 5월 23일 했어요. 제가 왜 개원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느냐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한 날이라서 그래요. 개원식 오신 분마다 다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야기를 하셔서 잊을 수가 없죠. 노 전 대통령을 그리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의대 다닐 때 학교 근처에서 두 번인가 본 기억이 납니다.”
이 원장은 현재 의료기관 세 곳(창원 터의원, 울산 터의원, 거제 터의원)과 역시 세 곳(터직업환경의학센터, 의료 관련 전산프로그램을 만드는 희원, (주)울산환경리서치)의 법인 대표를 맡고 있다.
계적인 의료서비스 제공돼야
이 대목에서 이 원장은 사업장 보건관리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50인 미만의 업체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50인 이상 회사는 보건관리자를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50인 미만에는 보건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어요. 사업주에 대한 페널티도 없어요. 관리 체계가 없는 겁니다. 50인 미만의 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54%이므로, 법률이 54%에 해당하는 근로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근로자건강센터가 만들어졌는데요. 저희 직업환경의학센터에서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에서만 저희 근로자건강센터가 관리해야 할 노동자가 대략 50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건강센터로 찾아오시는 분은 한 해에 4000명 정돕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가셨을까요? 그래서 건강센터가 과연 완전한 대안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산업재해에 대해서도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산재율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통계방식은 근로복지공단 승인 건수만 반영하는 거잖아요. 전체 노동자 수로 보면 굉장히 낮습니다. 문제는 사망률입니다. 대단히 높아요. 이건 뭘 의미하냐면 노동자들이 가벼운 질환은 아예 산재신청을 안 한다는 겁니다. 하인리 법칙(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법칙) 들어보셨어요? 하인리 법칙으로 산재문제를 보면, 예를 들어 사망사고와 같은 대형사고가 1건이면 경미한 징후나 사고가 329건이 발생해야 한다는 거든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산재 사망률은 굉장히 높은데도, 산재율은 낮아요. 산재 은폐 가능성, 숨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겁니다. 산재가 발생하면 기업에 많은 불이익을 줍니다. 이러다 보니 기업에서는 산재보다는 공상으로, 개인적으로 치료하라고 떠밉니다. 기업을 두둔할 마음은 별로 없지만, 지금과 같은 행정적 시스템으로는 산재 은폐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와 처지와 조건이 다르긴 합니다만, 미국은 산재로 가장 많이 인정받는 게 피부병인데요. 우리나라는 피부병과 관련해서 산재 신청을 하는 사람이 왜 없는 것일까요? 직업성 질환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창원이 ‘건강한 노동자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작업환경 측정도 할 수 있고요. 보건관리대행제도, 주치의 제도 있거든요. 이걸 함께 묶어서 최종적으로는 이 서비스를 노동자에게 제대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업주도 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고, 노측도 사업주와 대결구도, 이벤트성 보다는 큰 그림, 시스템을 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야기 주제가 조금은 무거운 쪽으로 흐르는 듯해서 ‘이철호 원장’ 개인으로 돌려봤다. 스트레스 해소법과 주량을 물었다.
“저한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등산인 것 같아요. 등산가면서는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합니다. 고민이나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이게 계속 커지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 정도는 숨이 찰 정도로 몸을 혹사하지요. 숨을 끝까지 차게 하면 스트레스가 좀 풀립니다. 등산은 이제 열 살로 많이 늙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랑 합니다. 부산 근교산을 오릅니다. 주량은 종잡을 수 없어요. 반 병에 ‘캑’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어느 땐 서너 병을 마셔도 괜찮고. 뭐 평균 소주 두 병 정도는 마시는 것 같습니다.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 편이고요.”
전공자 첫 개원의로서 본보기 되고 싶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뭐냐고 했더니 주저 없이 〈앨리스 해밀턴〉(우종민 옮김, 한울 펴냄)을 꼽았다. 앨리스 해밀턴(1869~1970)의 자서전인 이 책은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산업의학이란 새로운 학문을 개척한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앨리스 해밀턴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격동기를 살며 미국에서 최초로 직업병의 실체를 밝힌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지금처럼 돈 있고, 시간 되는 사람만 보건관리를 받는 게 아니라 1차 의료기관이 사업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제가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한 이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개업을 하고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인데요. 후배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후배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도 해보고 싶고요. 아무튼, 우리의 산업보건관리 체계가 서비스를 받는 이와 ‘응답 가능한 체계’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갈 길이 아직 먼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이 산업보건관리를 형식적인 행위로만 받아들이는데요. 안타깝습니다. 우리 잘못인 것 같습니다.”